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⑪ 금정산성 활터

입력 : 23.08.31 22:01|수정 : 23.08.31 22:01|국궁신문|댓글 0
승영사찰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등 호국사찰 유적지

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⑪ 금정산성 활터
승영사찰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등 호국사찰 유적지

  부산에 있는 금정산성은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1701년 축조되었으며, 국내에서 가장 큰 산성이다. 풍광이 멋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부산의 명소이다. 금정산성의 북동쪽에는 요새와 같은 지형의 명당에 범어사가 있으며, 산성 남쪽에는 관아가 있었던 금정진이 위치하고 있다. 관아 동쪽에는 군영사정(射亭-활터)이 있고 북쪽에는 승영사찰인 국청사가 있다. 이 지역을 산성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1872년도에 제작된 지방지도인 「금정산성진지도(金井山城鎭地圖)」 에 활터가 표기되어 있으나 활터 이름은 없으며, 사정(射亭)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군영에서 운영하는 관설사정으로 보인다. 아쉽지만 활터의 연혁을 알 수 있는 기문이나 자료 등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금정산성은 내성과 외성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성안에는 촌락도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사정(射亭)은 금정진의 우측, 국청사와 중리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사정 부쪽에는 국청사가 있으며, 국청사는 금정산성을 방어하는 승군 작대(승려들로 구성, 조직된 군부대)의 승병장이 주둔한 전략기지 사령부인 승장소였다. 산성의 동문과 남문을 관할 방어하였다. 서문 쪽에는 해월사가 호국사찰의 역할을 했다. 금정진 서쪽에는 죽전(竹田)마을이 있으며, 화살을 만드는 시누대 생산지의 역할을 했다.
 

[1872 지방지도-금정산성진지도 일부]

  산성마을로 불리는 금정구 금성동에는 3개의 마을이 있고 남쪽방향의 맨 위쪽이 공해마을로 옛날에 군관건물과 식량창고가 있었으며, 가운데 마을이 중성문이 있었던 중리(中里), 서쪽방향의 아랫마을이 화살을 만드는 시누대(竹)가 생산된 죽전(竹田)마을이다.
 
  죽전(竹田) 마을은 금성동에 있었던 자연마을로, 지금의 금성동 1통 일대, 곤실내(산성천)를 경계로 왼쪽 부근에 있던 마을이다. 화살을 만드는 원료인 대나무가 많이 나서 죽전(竹田) 마을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금정진의 관아, 산성 방어 사찰인 국청사와 해월사 그리고 종이 만드는 지소, 화살 제조 등 승병이 주둔한 국방마을이었다. 금정산성 금정진(金井鎭) 관아는 공해 마을에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부산의 자연마을』 「 제6권-동래구․금정구․연제구․수영구-」2011.

  금정진의 동쪽에는 사정(射亭)이 있었고, 그 위쪽에는 국청사가 있었다. 또한 관아의 서쪽으로는 죽전마을(竹田洞)이 있었는데 시누대 재배와 화살을 만들었다. 아울러 산성마을의 동쪽에는 산성의 동문이 있는데 동문 밖의 마을 이름이 장전동(長箭洞)으로 장전(긴화살)을 생산하던 곳이다. 1872년 지방지도에 기록된 지명들이다. 

  국청사(금성동 397번지)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678년)한 범어사 산내 암자로 전통 사찰 제18호이다. 국청의 사명(寺名)은 ‘청정한 마음으로 수행과도 같은 국난을 극복하는데 앞장서다’ 혹은 ‘나라가 외적의 더러운 발길에 짓밟힘을 막고 깨끗한 국토를 수호하다’라는 것이다. 국청사는 금정산성을 방어하는 승군 작대의 승병장이 주둔한 전략기지 사령부인 승장소였다. 산성의 동문과 남문을 관할 방어하였다. 금정산성승장인(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4호)은 승병 통솔과 관할을 위해 제작된 승장소의 직인으로 보인다. 승장인은 국청사의 성격과 금정산성의 승병 관계를 실증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國淸寺 金井山城僧將印)
 - 부산광역시문화재자료, 성보박물관 소장
 
  해월사(海月寺)는 국청사와 함께 금정산성 수축과 방어의 병영 사찰로 1708년에 창건되었다. 해월사는 북문 내에 있다는 사실로 미륵사로 보아 왔다. 위치, 사명(寺名), 사찰 영역, 흔적 등은 기록과 추정이 다르게 알려지고 있다. 해월사는 금정산성 내성(북문∼서문)을 승려 100여 명으로 방어한 승영 사찰인데 절터만 남아 있다. △출처: 『부산의 자연마을』 「 제6권-동래구․금정구․연제구․수영구-」2011.

△국청사 전경
 
 
  장전동은 금정산성의 동문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에 구서동, 서쪽에 금성동, 남쪽에는 동래구 온천동과 인접하고 있다. 1952년 상리(上里)와 하리(下里, 소정마을) 마을을 합하여 장전동이라 하였다. 장전(長箭)이란 긴 화살이란 뜻으로 화살대를 만드는 재료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장전의 전(箭)은 살대(시누대)로 우리나라 중부지방 이남과 해안지방에 서식하고 있어 화살대, 바구니, 조리, 담뱃대 등을 만든다. 장전동은 조선시대 군기(軍器)의 하나인 화살을 만드는 곳이었다. △출처: 『부산의 자연마을』 「 제6권-동래구․금정구․연제구․수영구-」 2011.

  금정산 북동쪽에 위치한 범어사는 군막사찰로 승병을 훈련시킨 곳이며, 국청사에는 승병사령관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금정산성 안팎에 있는 범어사와 국청사, 해월사(지금은 없음)는 호국불교의 대표적인 사찰로 나라가 어려울 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승병을 양성한 곳이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 2점이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유물명칭은 「죽전마을 화살과 화살통-竹田村箭盛箭具」이다.
 
△죽전마을 화살과 화살통-竹田村箭盛箭具


  범어사 성보박물관의 「죽전마을 화살과 화살통-竹田村箭盛箭具」소개 자료에 따르면 ‘범어사 화살’역시 죽전 마을에서 제작되었으며, 화살통과 화살 등의 유물은  승병 활동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국궁신문에서는 범어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한 「죽전마을 화살 및 화살통」관련 사진을 제공받아 내용을 살펴보았다. 전통에는 11 글자가 새겨졌고 재질은 오동나무로 추정되었다. 화살은 죽시이며, 둥근촉이다. 

  전통 두껑에는 「觀德」이라 쓰였고 본통에는 「君子」 「不可無」 「一技之藝」 가 적혀있다. 전통(箭筒) 뚜껑에 새긴 관덕(觀德)은 예기 사의 편에 ‘사자소이 관성덕야(射者所以 觀盛德也)’란 문장에서 따온 것이며,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일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활쏘기를 지칭할 때 관덕이라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설사정인 「관덕정」 또한 이 문구에서 가져온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 덮개(두껑)에는 ‘觀德’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본통에 새겨진 「君子」 「不可無」 「一技之藝」 는 군자를 기준으로 왼쪽 면으로 돌아가면서 불기무, 일기지예 순이고 군자와 일기지예는 전통의 180도 반대편에 배치되었다. 문장으로 이어서 해석하면  ‘활쏘기는 군자가 익혀야 할 없어서는 안 될 육례(六藝)중 하나의 기예이다’가 된다. 

 죽시(竹矢)는 1950년 후반, 한국전쟁의 여파(餘波)로 전쟁 후에 남겨진 카빈총의 탄피를 변형시켜 화살촉으로 사용하면서, ‘탄피촉’은 기존의 유엽전 촉을 대신하는데. 이 시점을 시발(始發)로 하여 차츰 화살촉의 형태가 바뀌게 되었다. 초기에는 각궁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죽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죽전마을 화살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화살의 제작시기가 근대로 추정되어 아쉬움은 있지만 죽전마을에서 생산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금정산성 및 사정(활터) 일원 

  금정산성에 있던 금정진의 군영사정인 활터는 국청사의 승병과 군영의 병사 등이 활쏘기를 수련하였으며, 인근에 있는 죽전마을과 장전동에서 시누대를 생산하고 화살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금정산성의 활터는 지금까지 알려진 부산지역의 활쏘기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의 활쏘기 문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료 빈곤으로 그 모습을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죽전마을 화살과 화살통-竹田村箭盛箭具」사구가 시간의 벽을 허물고 오늘의 궁사를 안내하는 길잡이로 다가오는 듯하여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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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는 「수영 연무정, 수영 청곡정, 동래 녹양정, 동래 만년대, 근대신문, 가덕도 활터」 등을 무순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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