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비전공하(射法秘傳攻瑕)』는 언제 간행되었는가
김기훈(육사 명예교수)
『사법비전공하』 라는 사법서는 그 등장과 전개가 매우 드라마틱하다. 삼십 여년 전의 일이다. 전통 사법 교범으로는 『조선의 궁술』(1929)만이 유일하게 알려 지고 있을 때, 고인이 되신 이용달 선생이 조선 초기에 기영(箕營 즉, 평양 감영)에서 출간된 최초의 한국 전통 사법서라 하며 『사법비전공하』(1994)라는 책자를 발굴하여 번역·소개하였다. 『조선의 궁술』 이외의 우리나라 전통 사법서를 들어 보지 못하였던 당시 국궁계에서는 이를 대단한 문화유산의 발굴로 인식하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자의 원본이 청나라 주용(朱墉)에 의하여 편찬된 중국 병법서인 『무경칠서휘해(武經七書彙解)』 (1700) 의 말권(末卷)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정 사우들이 번역한 『평양감영의 활쏘기』 비법(1999)으로부터 민속박물관에서 출판한 『사법비전공하』 (2008)에 이르기까지 4~5종 정도의 번역서가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러한 열기가 지속된 배경은 비록 중국 원전의 복각서라 하더라도 그것이 평양 감영에서 출간된 이상 우리 민족 유산의 일부라고 간주될 수 있고, 또한 그 책자가 교습서로서의 가치도 훌륭하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알만한 이들에게는 이 책자가 상당히 친숙한 고전 사법서의 하나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열기 속에 이 책자의 출간 연도에 대한 검토가 서지학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사법비전공하』의 간기(刊記)에 보면 <기미년 기영 개간 (己未年 箕營 開刊)>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미년을 연구자들은 나름 여러 가지 ‘합리적’인 추정을 통해 정조 23년(1799)이라고 비정하였다. 그 결과 『사법비전공하』는 활쏘기의 달인이라고 불리우던 정조의 또 하나의 업적으로 그럴싸하게 이해되고 소개되어져 왔다. 헌데 아쉽게도 이것은 사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결과 발생한 명백한 오류였다. 다음과 같은 사료들이 그 오류를 주장하는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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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 시험 필수 과목의 하나였던 무경칠서는 조선 초부터 복각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란으로 인한 망실, 기존 주석서의 부실함 등을 이유로 정조는 그의 말년에 조선판 무경칠서 주석서를 새롭게 편찬하려 하였다. 정조 21년(1797) 1월 22일 우의정 윤시동이 이 편찬 프로젝트의 방향을 국왕에게 보고하고, 그 방향을 국왕이 허락하였다. 아쉽게도 이 프로젝트는 바로 몇 년 뒤인 1800년 정조의 사망으로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법비전공하』의 출간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남겼다. 그 당시 조선에 『휘해』를 복각한 향본(鄕本) 즉 조선본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조선본이 무경 공부를 하는 이들의 전문서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승정원 일기』가 남긴 그 결정적인 단서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의정 윤시동이 보고한 내용의 일부이다. “《무경칠서휘해(武經七書彙解)》는 강희(康熙) 연간에 주용이 찬집한 것입니다. 복각한 향본(鄕本)도 있는데 이것은 바로 무경을 공부하는 이들의 전공 서적입니다. 역대의 병술가들을 널리 인용하였는데, (《무경칠서 직해》를 편찬한) 유인의 설(說)도 그중에 들어 있습니다.”(武經七書彙解, 康熙中朱墉所撰輯者也 亦有翻刻鄕本, 乃是武經生專門之書也 博引歷代談兵家, 而劉寅之說, 亦在其中,)
1797년의 이 사료는 그동안 우리가 추정해 오던 기미년 간지가 1799년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자의 조선본 간행연도는 주용의 원전이 출간된 1700년 이후 1799년 (정조 23년) 이전의 기미년 즉 1739년 (영조 15년)에 해당할 수 밖에 없다. 정조대가 아니라 영조대에 발간된 것이다.
영조 연간에 이 복각본이 발행된 사실을 직접 언급하는 기사는 아직 발견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영조 15년 (1739)에 간행되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기사가 『승정원 일기』에 실려 있다. 영조 14년 (1738) 10월 20일 기사에 의하면, 행부호군 구성임이 무경칠서를 기영에 내려 보내어 인출하도록 하였다고 보고하자, 영조가 출간 여부를 물었다. 이에 구성임이 “아직 완료하지 못하였으나 완료되면 즉시 비국으로 올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답변한다. (“聖任曰, 頃者武經七書, 仍聖敎下送箕營, 使之印出矣 上曰, 已果開刊耶? 聖應曰, 姑未畢刊, 畢刊後, 卽爲上送備局之意, 申飭矣”) 이 기사로 미루어볼 때, 다음해인 기미년 즉 1739년 (영조 15년)에 기영판 『무경칠서휘해』가 간행되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판단된다. 필자는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연구자나 소장처에 더 이상 평양 감영판 『사법비전공하』의 간행 연도를 정조대로 추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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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사법비전공하』의 간행 연도에 대한 그 동안의 오류가 최근에 발표되는 관련 논문 속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어, 그 수정 필요성을 제안하는 의미로 시도되었다. 그런데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재검색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연관된 서지학적 정보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법비전공하』가 포함된 기영본 『무경칠서 휘해』 원문의 소장처에 관련한 사항이다. 『사법비전공하』라는 제목의 원문 책자는 우리나라의 장서각을 필두로 몇 군데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공하』의 출처가 되는 『무경칠서 휘해』 전체 판본은 우리나라에는 없고 일본의 오사까(大阪) 부립 나까노시마(中之島) 도서관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 결과 국내의 두 기관에서 일본 자료를 활용하여 원문을 소개하고 있다. 그 한 기관은 국립 중앙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에서 해외소장 고도서 자료 영인 과제의 일환으로 1987년 이 책자를 영인하여, 현재 그 영인본을 소장 중이다. 두 번째 기관은 고려대학교 해외정보학술 센터이다. 여기에서는 나까노시마(中之島) 도서관 소장의 『무경칠서 휘해』를 디지털화하여 국내에서 독자들이 손쉽게 그 원문을 이미지로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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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인터넷 검색 중에 발견한 사실은 기영 판본 전질이 한국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7년 한국은행이 일제 강점기부터 소장해 온 고도서를 규장각에 위탁관리를 하면서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그 전시 도록에 『무경칠서 휘해』 전권이 귀중본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었다. 이 도록을 연결고리로 하여 즉시 규장각 원문을 검색하여 보았더니, 현재 규장각에서 그 전질을 소장 중이며 원문을 방문 열람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동안 기영본 『무경칠서 휘해』 원본이 일본에만 존재한다고 소개하였던 정보는 모두 수정되어야 한다.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소장되고 있음을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휘해』의 일부로 포함된 『사법비전공하』 에 대한 소개에도 이런 사항이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상은 발간과 소장처에 관한 서지학적 재검토였다. 이 검토 내용이 앞으로의 『사법비전공하』 연구와 활용에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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