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⑮ 동래 만년대

입력 : 24.01.15 10:45|수정 : 24.01.15 10:45|국궁신문|댓글 0
1872년 성 밖 서쪽에 세워진 강무장(講武場)
남문 밖 활터 녹양정과 같은 해 새로 설립

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⑮ 동래 만년대
1872년 성 밖 서쪽에 세워진 강무장(講武場)
남문 밖 활터 녹양정과 같은 해 새로 설립

  1872년 동래성의 남쪽에는 녹양정이 서쪽에는 만년대가 새로 세워졌다. 1872 지방지도에는 서쪽 만년대 위치에 사정(射亭)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남쪽 녹양정이 있는 부분은 아무런 표기가 없다. 반면에 1877년 동래부지에는 만년대가 무예를 익히는 교장으로 기술되어 있고 녹양정은 사정으로 표기되어 있다. 관덕정이 기록에서 사라진 후 무예와 활쏘기를 익히는 곳으로 녹양정과 만년대가 자료에 기록되었다. 이번에는 지난 번 「녹양정(綠楊亭)」에 이어 「부산지역 활쏘기 역사와 문화」시리즈 열다섯 번째로 동래성 밖 서쪽 「만년대(萬年臺)」를 소개한다.(심곡)

■ 1872년 지방지도에 기록된 사정(射亭)
    『1872년 군현지도』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1872년 팔도감영에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이다. 
 

▲1872. 동래읍성 서쪽 사정(射亭)

 동래부의 읍치인 동래읍성은 지금의 동래구 일원이다. 읍치는 동래구 수안동 인근이며 읍치의 동편에는 임진왜란 시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부산첨사 정발을 배향한 충렬사(忠烈祠)가 표시되어 있다. 읍성의 서쪽 암문(暗門) 밖 만년교 위쪽으로 온천천 옆에 사정(射亭)이 있다.

■ 동래부지 東來府誌. 1877년


▲만년대 부분 동래부지 갈무리

  1877년(고종 14) 경 제작된 동래부(東萊府)의 지리지이다. 편저자는 미상이며, 관에서 주도하여 제작된 관찬지리지로 판단된다. 동래부 지리지는 1740년 『동래부지(東萊府誌)』, 1868년 『동래부사례(東萊府事例)』, 1894년 『영남영지(嶺南營誌)』, 1899년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 등이 있다. 본 지리지는 1877년 경에 제작되었으며, 기존에 있던 지리지의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원본은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한국학자료센터>
 동래부지 본문 누정(樓亭) 편에는 만년대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 (원문) 萬年臺. 在府西門外卽敎場將坮也同治壬申移建新之
 ○ (국역) 만년대. 부의 서문 밖에 있으며, 동치 임신년(1872)년 새로 세운 무예를 가르치는 장대이다.

■ 해은일록(海隱日錄) 1883-1914
  -『國譯 海隱日錄Ⅰ- Ⅵ』. 2008-2013. 부산근대역사관
  - 민건호(1843-1920), 1883 부산감리서 근무, 1885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현 외교부), 1890 부산감리서 방판, 1891 다대진첨사, 1894 가을까지 부산에서 관료 생활
   다대진 첨사를 역임한 민건호의 해은일록에는 다대진 뿐만 아니라 동래읍성 및 좌수영성의 활쏘기와 관련한 기록이 다수 있으며, 이중 동래읍성에서 활쏘기를 한 장소로는 ‘학소대’, ‘객사후문’, 만년대 등이 기록되어 있다.

○ 1885.11.24. 추움.
오늘 동래부 포군들이 만년대에서 시험 발포가 있어, 또 가서 구경하였다.  밤에 경농(經農)이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즐겼다.
○ 1886.10.06. 맑음.
동래부에 머물렀다. 무과(武科) 시험을 베풀어 당일 마쳤다. 나는 동래부에 머물러 있었다.
○ 1891.10.04. 맑음.
   일찍 일어나 시소(試所)인 만년대(臺)로 나아갔다. 사시(時) 정각에 감리어른께서 수레를 타고 개장(開帳)에 도착해서, 별기위(別騎衛) 거자(擧子)10여명을 응시(應試)했다. 아침밥은 시소(試所)에서 대접했다. 신각(申)에 한 교자상(交子床)을 차려 내오자, 백령관(白領官)과 함께 양껏 먹었다. 수의(繡衣) 김사철(金思轍)이 범사(梵寺)에서 내일 본부(本府)로 행차한다는 노문(路文)과 사통(私通)이 시소(試所)에 이르렀다. 속히 과시(科試)를 설행해서 우등(優等) 1명 조석규(曹碩圭)의 이름을 창방(唱榜)하고 시권(試券)을 거둬서 본부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수의(繡衣)가 내일 행차한다더니 동헌(東軒)에 도착했다.
○ 1892.10.07. 극히 추워 얼음이 얾.
  일찍 시소(試所)인 만년대(萬年臺)에 나갔는데, 부백(府伯)이 뒤 따라와 개장(開場)하였다. 5기(五技)의 우등(優等) 1인 박계근(朴桂根)과 몰기(沒技) 1인 최석준(崔錫俊)을 시취(試取)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하였다. 본부로 돌아와 유숙하였다.
○ 1893.09.02. 맑음.
  부(府)에 들어가 감리장(監理丈)과 함께 학소대(鶴巢臺)에 가서 습사(習射)하고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대유(大有)가 부(府)에 올라갔다.
○ 1893.09.03. 맑음.
  또 감리대인(監理大人)과 객사(客舍) 후문(後門)에 가서 습사(習射)하고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 1894.02.26. 맑음.
  밥을 먹고 감리대인(監理大人)을 모시고 만년대(萬年臺)에 가서 시사(試射)를 하면서 시일을 보내려고 하였는데 바람 때문에 시사(試射)하기 불편해서 본부(本府)로 돌아와 양껏 마시고 유각에 서(署)로 돌아왔다.
 

▲ 해은일록 속 동래읍성 활쏘기 요약

  민건호의 해은일록에는 7건 동래읍성 활쏘기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만년대와 학소대 그리고 객사의 후문에서 활쏘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래읍성 만년대는 포군의 군사훈련과 무과시험을 치른 시소(試所)로 확인되었으며, 1892년 10월 7일 무과시험에서 2명의 직부전시(直赴殿試-조선 시대 과거의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에 곧바로 응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 결과는 1855년 작성된「관덕정수호절목」의 무과 복시(覆試)에 관한 조항과 함께 동래부 지역의 무과운영과 관련하여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만년대 외에 객사 후문과 학소대에서 활쏘기를 했다는 기록 또한 활쏘기 장소가 사장(射場) 또는 사정(射亭) 인지 공간의 형태 구분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통해 동래지역의 활쏘기문화를 살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동래부산도병 東萊釜山圖屛. 1905년 경


▲동래부산도병 10폭

   동래부산도병(東萊釜山圖屛)은 20세기 초 동래 전역 즉 현재의 부산 지역을 그린 회화에 지명을 부기한 10폭 병풍으로 동래부 各面과 부산부의 부산면을 망라하고 있다. 지도라기보다는 일련의 산수화로서 느낌이 강하며, 산수의 형상, 성곽 주변의 경물, 사원, 항만, 선박 등을 능숙하게 묘사하였으며, 색감을 조화롭게 사용하였다.
  제작 시기는 증기선이 3척 이상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증기선의 부산 내왕이 일반화된 시기 이후이고, 1905년 경부선 개통되기 이전의 시기이다. 관아 건물로는 1883년 동래감리서 설치 이후에 해당되며, 왜관이 일본 전관 거류지로 일관(日館)으로 불렸던 시기로 볼 수 있다. 행정구역 면에서는 부산면(釜山面)이 설치된 이후이며, 구포가 양산군에 소속되었던 시기이다. 이 작품은 1905년 외교권의 박탈로 부산이사청이 설치되어 왜관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불리고 이후 부산면(釜山面)이 새로이 구획된 시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을 통해 동래읍성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으며, 향교의 서남쪽에 있는 만년대와 휴산 언덕의 관덕정이 있었던 위치를 지도에 표기된 지형의 모습을 보고 활터가 있었을 지점을 추정할 수 있다. 
 

▲동래부산도병7폭. 성밖 서쪽 향교일원 갈무리

  향교의 남쪽에 숲으로 조성된 채 넓은 공간이 나온다. 왼쪽 숲 앞에는 팔작지붕의 기와건물이 한 채 있으며, 만년대(萬年臺)로 표기되어 있고 맞은 편에는 읍성에서 동래온천천 방향의 길이 있으며 하천을 건너는 길에 ‘서천교(西川橋)’로 표기되어 있다. 만덕령을 지나 김해지역으로 향하는 서천교는 1872 고지도를 비롯해 다른 자료에서는 대부분 만년교(萬年橋)로 표기된 다리이다. 

  만년대는 1872 지방지도에 사정(射亭)으로 표기되었으며, 1877년 동래부지에서는 1872년 새로 건립된 무예를 익히는 교장으로 기술되었고 해은일록에서는 궁술연마를 위한 습사와 무과시험을 치른 장소로 기록되고 있다. 만년대는 주로 관에서 시행하는 시사와 무과 그리고 군사들의 훈련장소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만년대가 있었던 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부산 동래구 명륜동 481’번지에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만년대터 표석

  만년대가 있었던 장소는 도시철도 동래역 4번 출구 동쪽부터 부산중앙여고에 걸친 공간으로 추정되며 정자는 북쪽에 있고 무겁은 남쪽이다. 
 

▲만년대터 추정지

  1872년 같은 해에 설립된 동래읍성 남문 밖 녹양정과 만년대는 관덕정에서 수행하던 무과, 군사훈련, 사정 기능을 분리하여 만년대는 공식적인 군사훈련을 비롯한 무과 시험장소 등으로 활용하고 녹양정은 순수한 사정(활터)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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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연재는 「동래 관덕정 위치, 수영 청곡정, 가덕도 활터, 근대신문」 등을 무순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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