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터의 아름다운 풍속, 집궁회갑

입력 : 17.11.30 08:51|수정 : 18.01.06 08:51|국궁신문|댓글 0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귀중한 풍속

회갑은 태어난 지 60년을 기념하는 잔치이다. 동양에서는 시간을 60간지로 표기했는데, 자신이 태어난 해와 똑같은 간지의 해가 돌아온다는 뜻에서 회갑, 또는 환갑이라고 한다. 회갑이나 환갑이나 모두 갑이 돌아온다는 뜻이고, 여기서 말하는 갑은 천간의 첫 글자이다. 지금이야 영양이나 보건 상태가 좋아서 100세 인생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옛날에는 60년을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회갑을 맞으면 큰 잔치를 벌이곤 했다.

태어나 사는 것도 1갑자 60년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는데 활을 쏜 지 60주년을 맞는다면 어떨까? 이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 될 것이다. 20살에 활을 배웠따고 해도 활로 회갑을 맞으려면 80세가 되어야 하는데, 옛날에 이런 기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도 이런 특별한 이력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활터에서는 그런 사람을 위해서 특별한 잔치를 했다. 이를 집궁회갑이라고 한다.

집궁회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의 궁술>(1929)에 나온다. '역대의 선사'라는 곳에서 서울 황학정의 정행렬이 집궁회갑을 맞이하여 활터 사람들이 잔치를 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국궁계에서는 간간이 집궁회갑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최근의 집궁회갑 기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944년 성문영(서울 황학정)
1977년 장석후(서울 황학정)
1979년 박병일(금산 흥관정)
1994년 윤준혁(부산 수영정)
2001년 성낙인(서울 황학정)
2001년 김현원(인천 무덕정)
2016년 박문규(대전 대동정)


특이한 기록은 대를 이어 집궁회갑을 한 경우이다. 성문영 성낙인, 그리고 박병일 박문규는 각각 부자 관계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도 집궁회갑을 한 대기록이다. 이밖에도 장석후는 집궁회갑을 한 이후에도 20년을 더 쏴서 집궁 80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활터에는 일반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풍속이 많다. 한국의 활터는 단순히 활만을 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내내 왕실에서 가장 중시하고 왕이 직접 즐긴 스포츠였기 때문에 고위층의 사교장이기도 했고, 로비이자 살롱이기도 했다. 그런 모임이 바로 사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미풍양속이 아주 잘 보존되어 지금까지 전하는 곳이다.

집궁회갑의 경우는 무술이 발달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보지 못하는 특이한 풍속이다. 한 분야에 60년 몸담는 것도 힘들지만, 대부분의 무술은 젊은 기운으로 하다가 나이 들면 젊은이들을 당해낼 수가 없어서 저절로 은퇴시기가 짧아진다. 그렇지만 활쏘기는 특이하여 내일 관 속에 눕게 되어도 오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래서 이런 특이한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한국의 활터에는 무궁한 문화 자원이 있다. 그런 자원을 잘 살펴서 우리의 미래를 엮어갈 필요가 있다.

 


△1944년 성문영 집궁회갑 사진(성낙인 찍음)


△ 박문규 집궁회갑

  참고자료
-이중화, 조선의 궁술, 조선궁술연구회, 1929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 학민사, 2013
-온깍지궁사회, 한국활의 천년 꿈 온깍지궁사회, 고두미, 2016
-정진명, 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고두미, 2017

출처 : 국궁포럼(http://cafe.daum.net/CAFE.K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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