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2
활쏘기에 입문하면서 '전통문화라는 국궁'을 배우면서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활터의 풍속이 있다. 다름 아닌 '정간(正間)'이다.
국궁에 입문하여 활쏘기와 관련된 자료 수집중에 '정간(正間)'에 대한 역사 자료를 찾으려고 사방팔방으로 많은 사서와 고전을 뒤져보았다. 결국 '정간(正間)'과 관련한 문헌은 찾을 수 없었으며 그럴수록 '정간(正間)'은 우리 민족의 정통 활터 풍속이 아니라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전국 활터를 아주 강하게 구속하고 있는 정간은 과연 무엇일까?
활터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해야하고 각종 대회나 행사시에는 '정간배례'라는 식순에 따라 예를 갖추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타 사정에 가게되면 정간 앞에서 바른 자세로 예를 취해야 한다. 그러한 예를 취하지 않으면 아주 못된 한량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과연 이러한 무조건 적인 예를 취해야 하는 나무 판떼기에 새겨진 '정간(正間)'은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발행인이 조사한 자료들을 소개해 본다.
첫째, 조선의 궁술에 관하여 가장 풍부한 풍속을 소개하고 있는 자료는 1929년 발간된 '조선의 궁술'이다. 물론 이 자료에는 '정간(正間)'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조선의 궁술은 명실공히 한국 활쏘기의 진수를 기록한 궁술 서적이다.
둘째, 1799년 발간된 사법비전공하(번역본, 평양감영의 활쏘기 비법)에도 정간에 대하여 기록된 자료가 없다.
셋째, 조선시대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구가 작성한 임원경제지의 사법(射法) 편인 '유예지' 부문에도 각종 사법 이론은 기록되어 있으나 '정간(正間)'이라는 단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넷째, 활쏘기와 관련한 최대 분량의 내용이 기록된 '조선왕조실록' 및 '승정원 일기'에서도 '정간(正間)'이라는 말은 기록되어 있질 않았다.
다섯째, 1828년부터 활터 풍속의 상세한 기록을 남긴 강경 덕유정의 사계좌목에도 '정간(正間)'이라는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에 덕유정의 사계좌목에는 활터의 어른인 사백(사두)이 활터에 들어 올 때 활터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하는 예의에 대하여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덕유정에서 보존중인 사계좌목은 호남칠정으로 대변되는 금강 유역에 있는 활터 풍속의 진수이다. 참고로 강경 덕유정은 현존하는 활터중 조선시대 민간사정의 풍속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여섯째, 1896년부터 1945년 사이 근대신문에 보도된 약 800여건의 궁술대회 신문 기사내용중 '정간배례'를 취했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일곱째, 근대 국궁의 종가격인 황학정에는 아직도 '정간(正間)'은 없다.
발행인이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활쏘기에서 가장 엄숙한 예를 요구하는 형식의 행사는 '대사례, 향사례'등이다. 물론 이러한 문헌을 조사해 보아도 '정간(正間)'이라는 오늘날의 형식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사료와 각종 문헌을 조사해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정간(正間)'은 과연 언제 어디서부터 발생하여 전파된 것일까? 그것을 연도별로 확인해보자.
1986년 발간, 한국의 궁도-대한궁도협회
해방이후 발간된 궁술 서적중 가장 많이 보급된 책은 '한국의 궁도'이다. 한국의 궁도는 1929년 발간된 '조선의 궁술'을 현대어로 알기 쉽게 옮겨놓은 내용이며 궁시제작등이 일부 추가되어 재구성한 서적이다. 이 책은 2000년 7월 4판을 인쇄하였다. 4판 인쇄본의 "9장 정간(正間)"편을 보면 정간에 대하여 호남과 영남 그리고 서울지방에서 구전되는 3가지 설을 설명하여 놓았으며, 모두 불분명한 역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 1986년을 가준으로 서울 황학정과 전주 천양정에는 정간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보충 설명으로 전북 남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파급되었다고 추측하는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이것이 전국 사정의 최고 기관인 '대한궁도협회'에서 정간에 대한 규정을 하고 있는 공식적인 내용이다.
1999년 발간, 한국의 활쏘기-정진명 저
정진명 저서인 한국의 활쏘기는 1929년 발간된 '조선의 궁술' 이후 최대 분량의 궁술 서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도 '정간(正間)'에 대하여 많은 지면(40쪽-54쪽)을 할애하여 정간의 파생과정과 의미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정간에 대한 자료는 주로 사료와 함께 해방전에 활을 쏘기 시작한 원노궁사들에게 확인하는 과정을 통하여 서술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1960년대 초 전주 천양정에서 생성된 것이며, 천양정 대회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번져갔다고 한다.
2000년 발간, 이야기 활 풍속사-정진명 저
이야기 활 풍속사는 주로 원로궁사(주로 해방전에 집궁한 舊射)들과 활터 풍속에 대하여 대담한 내용을 채록한 책이다. 전국의 각 지역별로 활쏜 연조가 가장 오래된 분들과의 대담 내용이며 내용중에 '정간(正間)'의 생성 연대에 대한 대회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해방전에는 '정간(正間)'이 없었다고 전하며 호남지방에서 생성되어 파급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즉, 근대에 이르러 특정 지방에서 생성된 활터 문화임을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02년 발간, 국궁논문2집-온깍지궁사회
2002년 온깍지궁사회에서 발간한 국궁논문 2집의 '사풍에 대한 고찰' 본문 내용중에 '정간(正間)'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정간에 대한 믿음이 부풀려졌다고 단언하고 있으며, 정간을 두고 그것이 마치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활터의 풍속인양 전국의 활터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로 인식하는 것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다. 특히 활터 고유의 풍속을 유지, 계승하려면 등정례를 지키라고 한다. 등정례는 말 그대로 활터에 들어설 때 갖추는 예법으로 먼저 와 있는 사우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활터의 다양한 풍속과 한민족 고유의 전통 활쏘기의 정통성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이젠, 전국 사정을 획일적이고 숭배적인 모습으로 강하게 구속하고 있는 정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토론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각종 행사시 사용되는 식순에서 '정간배례'에 대하여 재고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정간은 우리 민족의 풍속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웃 나라의 풍속을 가져와 토착화 시켰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국 독자제현의 의견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