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의 정치학: 예사(禮射)

입력 : 23.06.26 16:11|수정 : 23.06.26 16:11|국궁신문|댓글 0
대사례는 국왕이 주관하는 활쏘기 의례

국궁의 정치학: 예사(禮射)
대사례는 국왕이 주관하는 활쏘기 의례
 
​​​​​​
[어사례도 御射禮圖-①]​

국궁의 정치학: 예사(禮射) 
 
김기훈(전통활쏘기 연구회)

 국궁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품었던 질문은 우리 활쏘기가 다른 나라의 활쏘기와 비교할 때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사냥과 전쟁 도구였었고, 민속놀이의 하나였다는 점은 대부분의 민족 활쏘기와 공통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활쏘기에는 대사례, 향사례 등 사례(射禮) 혹은 예사(禮射)라고 불리는 활쏘기가 존재한다. 다른 활쏘기 문화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활쏘기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필자는 예사가 포함됨으로써 국궁은 고도의 정치적 요소를 포함한 활쏘기가 되었다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간혹 국궁의 정치학이란 말을 사용한다. 아직 숙성되지 못한 용어요 개념이지만, 국궁 행사가 분명히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예를 연산군 시대의 대사례와 관련된 한 사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대사례는 국왕이 주관하는 활쏘기 의례로서 우리나라는 조선조에서만 시행되었다. 성종부터 영조까지 모두 6회 시행되었는데, 그 중 연산군 시절에 두 번 시행된다. 연산군 8년 (1502) 3월에 성균관에서, 연산군 11년 (1505) 9월 경회루에서 시행되었다. 여지껏 훌륭한 국궁문화로만 대사례를 알고 있던 이들은 이 사실을 아는 순간, 아마 필자의 경험처럼 잠시 멈칫하게 될 것이다. 연산군은 신진 사림파를 대거 숙청한 연산군 4년 (1498)의 무오사화, 생모인 폐비 윤씨 문제로 더욱 가혹하게 진행된 연산군 10년(1504)의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그 결과 포악함과 패륜의 대명사로 알려진 연산군이다. 이 연산군이 갑자사화 전후로 두 번의 대사례를 시행한 것이다. 군신 간의 의리를 재확인하고 상하 친목도 도모한다고 알려진 대사례가 폭군 연산군에게는 일방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의구심을 부채질하는 하나의 사건이 연산군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어사례도 御射禮圖-②]​

 연산군 11년 (1505) 9월 13일 연산군 시절의 두 번째 대사례가 시행된다. 이보다 한 달 쯤 전인 8월 1일, 대사례(大射禮)의 시사관(侍射官)에 포함된 호조 참의(戶曹參議) 권구(權俱)가 팔이 아프기 때문에 시사관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대한 연산군의 반응을 연산군 일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사례는 덕(德)만을 보는 것이요, 그 기예(技藝)를 겨루는 것이 아니므로, 늙은 재상(宰相)들도 모두 활 쏘는 반열(班列)에 참여한다. 구(俱)가 잘 쏘지는 못할지라도 약한 활로 예(禮)를 이루기는 본디 어려운 일이 아니거늘, 감히 사면을 청하였으니, 이는 명을 거스름이며, 승지(承旨) 윤순(尹珣)이 전계(轉啓)한 것도 옳지 않으니, 모두 국문하라.”("大射禮只爲觀德, 非較其藝, 故年老宰相, 竝參射列。 俱雖不能射, 以弱弓成禮, 固非難事, 乃敢請辭, 是爲逆命。 承旨尹珣轉啓, 亦不可, 竝鞫之。")

 
이 사건은 빠르게 종료되었다. 이틀 뒤인 8월 3일 의금부는 권 구가 ‘명을 거슬려 활을 쏘지 않은 죄’를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에 의하여 참대시(斬待時)’로 처벌할 것을 건의하였고, 연산군은 그대로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은 임금이 발행한 문서를 버리거나 훼손한 자에게 참형에서 장(杖) 1백대 사이의 벌을 과하던 형벌이다. 참대시(斬待時)는 목을 베는 참형의 시기를 조정하여, 가을과 겨울 사이의 시기를 잡아 처형하는 것을 말한다. 

 조정의 고관 대신에 해당하는 정삼품 당상관인 호조참의를 팔이 아프니 활쏘기를 면제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고 하여 참형에 처한 것이다. 이 사건은 대사례를 군신간의 화목은커녕 신하들을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는 하나의 정치적 행사로 추락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폭군 연산군이기 때문에 일어난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우연이 아니라 예사가 본래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약간 다른 이해가 가능하다. 유학자들이 주나라 시대에 형성된 예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집대성 해 놓은 경전은 『예기(禮記)』 「사의(射義)」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덕(觀德)이라는 개념의 발원지이다. 이 경전에 의하면, 대사례를 통하여 군주는 참석한 신하들이 공손한 몸가짐을 가지고 의식 절차에 잘 맞추어 움직이면서 활을 쏘는 것을 관찰함으로서 그들의 덕행을 살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덕행은 궁극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폭동이나 반란 등의 변란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가짐을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군주는 국가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德行立則無暴亂之禍矣.功成則國安.)

 다시 말하면, 대사례라는 예사는 원래 중국의 주나라 왕실이 당시 군사력을 지닌 봉건 제후들을 무력이 아니라 활쏘기 의례라는 인문적인 방법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런 제도가 이천여 년 뒤에 조선 왕조에서 재현된 것이다. 부수적인 변화는 당연히 있었겠지만, 군신간의 상하 질서를 강화하도록 정교하게 디자인된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의 대사례도 주대의 대사례와 동일한 정치적 이념을 구현하는 장치였다. 이런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의식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신하를 왕명을 거역한 불복종의 죄로 처단한 연산군의 처사는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전혀 예측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연산군에게 대사례는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또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간주된 것으로 보인다. 예사의 정치학을 극단적으로 보여 준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사례도 御射禮圖-③]​

 한국에서는 예사에 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 그 연구도 전국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예사 관련 경전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에 비해, 중국에서는 은나라나 주나라 당대의 기록들인 갑골문이나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 등을 이용하여 예사의 발생 원인이나 초기 형태들을 연구하고 있다. 유가적인 관점으로 지나치게 이상화되거나 변형된 측면들이 수정 보완되고 있고, 예사의 정치적인 목적과 그 사례들도 이 과정에서 많이 밝혀지고 있다.
 

 홍콩의 중국 전통활쏘기 전문가인 스티븐 셀비(Stephen Selby)교수가 7월 초에 서울 TAC 실내활터에서 예사의 기원과 특징들에 대한 중국학계의 연구성과와 아울러 그의 생각을 우리 국궁계에 소개할 예정이다. 그의 방한에 앞서 우리나라 활의 역사 속에서 예사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어사례도 御射禮圖-④]​
ⓒ 국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가 될수 있습니다.등록
국궁신문 l 고유번호 621-82-89069 l 창간일 2000-03-07 l archerynews@gmail.com l 국궁포토 l 심곡재 l 밴드
Copyright  국궁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