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문화유산, 경기도 양평군 택승정(澤升亭)-①

입력 : 23.01.18 11:55|수정 : 23.01.18 11:55|국궁신문|댓글 0
종중 운영 활터로 조선시대 활터 연구에 귀중한 유산

국궁문화유산, 경기도 양평군 택승정(澤升亭)
종중 운영 활터로 조선시대 활터 연구에 귀중한 유산

 □ 머리말

 택승정은 조선시대 한 가문에서 세워 많은 무관을 배출한 활터이다. 지금은 과녁은 사라지고 정자만 남아있다. 정자 이름 ‘택승澤升’의 뜻을 요약하면 “활쏘기는 군왕의 법도요, 군자의 행실”이라는 말이다. 당시 군영軍營에 있던 활터를 제외하고 일반 백성들의 활터는 주로 사계射契1)를 중심으로 운영하였는데, 택승정은 한 집안 종계宗契에서 운영한 특징이 있는 활터이다.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부터 옛 지명 경기도 지평현 광탄廣灘(너븐 여울)에 이주하여 살던 남원 양씨南原 梁氏들은 흑천변黑川邊2) 송구평松衢坪에 활터를 만들어 습사장習射場으로 사용하며 무예를 익혔다. 이백 년 넘게 조상 대대로 사용하던 이 활터에 순조 30년(1830) 사정射亭을 건립하여 비로서 모양을 갖춰 활쏘기를 했다. 

 택승정이라는 이름에는 모든 활터 이름이 활쏘기를 하며 정신적으로 추구하던 이상을 함축하고 있듯이, 양씨 가문이 후손들에게 군자의 행실로서 활쏘기를 장려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번 기회에 택승정에 묻혀 있는 여러가지 얘깃거리를 찾아서 몇 편으로 나누어 실어 택승정의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택승정의 전반적인 모습을 싣는다. 
 
 (택승정. 우측 하단에 표지석이 있다)
   
□ 택승정 표지석 
 다음은 남원양씨 문양공파 곡산공 종중에서 세운 택승정 표지석 내용이다.
 
택 승 정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 산175-3 번지
 
 “택승정은 옛부터 남원양씨 문중의 세거지(世居地)로 후손들이 인의예지의 덕목을 높이며 심신단련과 호연지기를 쌓아 선비의 도량을 연마한 활터이다. 서기 1830(순조30 庚寅)년에 최초로 골기와 사정(射亭)을 창건하였으며 서기 1840(헌종6 庚子)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양주태 장군께서 친필 현액하였다. 담 터 돌(발 받침석)3) 이 현존하며 서기 1896년 김석규 찬문(撰文)4) 을 비롯하여 후세 문사들의 예찬시가 현액되있다. 택승정에서 궁술무예를 연마하고 봉황정에서 인과 예를 논하며 시서(詩書)를 하니 찾아오는 문인과 묵객들이 끝일 날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학문을 한 후손들이 문과와 무과에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인원이 수백여 명에 이른다.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재 건립한 초라한 정자를 서기 2007년 10월 문중의 뜻을 모아 애초에 창건한 건축양식을 고증하여 의(義)에 둔 습사정신(習射情神)을 바로 세우고자 초익공(初翼工) 팔작(八作)지붕과 누마루로 재건립하여 단아한 선비의 모습을 상징하는 택승정으로 거듭 세웠다.”
 
(택승정 표지석)

△ 내용 살펴보기                                       
 경기 지방의 오랜 역사를 지닌 활터(사장射場) 대부분이 처음에는 논이나 밭, 개천가에 솔포를 걸어놓고 활을 쏘다가 사계와 같은 조직을 갖추면서 정자(사정射亭)를 세웠다. 양씨 가문 역시 광탄 입향 이후 오랫동안 봉황대 아래 송구평 습사장에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를 익히다가 무과 급제자들이 많이 나오면서 사정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인근 봉황대에서 글 공부하던 선비들도 활쏘기와 말타기가 선비의 덕목인 육예六藝5)의 중요한 과목이었으므로 활터를 자주 찾았다. 

 활터가 언제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광탄 입향 후 봉황대를 창건한 1624년(인조 2)과 비슷한 시기로 보인다. 봉황대는 광탄에 살던 남원 양씨 종중에서 세웠고, 봉황대 아래 송구평 들판에 습사장을 만드는 일은 봉황대를 짓는 일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당시는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宣祖 임금이 백성들에게 활쏘기를 장려하던 시기라 나라 곳곳에 활터가 세워지던 시기였다. 이 후 사정이 세워진 1830년까지는 송구평 노천 사장에서 습사했고, 사정을 세운 후 2022년까지 192년이 흘렀다. 도합 약 400년의 역사를 지닌 활터인 셈이다. 

○ 등장 인물
  양주태. 광탄 입향조 응자행렬의 8대 후손으로 1837년(헌종 3) 식년式年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병마절도사(종2품, 亞將이라고도 부름)를 지냈다. 

  김석규. 본관 안동으로 고종 때 주로 판사로 활동한 문신이다. 택승정기문澤升亭記文을 지었으며, 대한제국 법부 법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 의義에 둔 습사정신習射情神
 후손들에게 당부한 “의에 둔 습사정신”은 택승정기문에 “정내지 직외체 正內志 直外體”문구로 나타나 있다. 곧“안으로는 뜻을 바르게 하고 밖으로 몸을 곧게 하라.”는 뜻으로 활쏘는 마음 자세를 이른 말이다.”“정내지 직외체”문구는 「예기禮記 사의射義」에 나오는 말이다. 

○  택승澤升 
 택승정기문의 풀이에 따르면 「예기의 사의」를 바탕으로 “못 가에서 활을 익히는 것은[습사어택習射於澤] 선왕先王의 법도이며, 예절을 지켜 정자에 오르는 것은[읍양이승揖讓而升] 군자의 도리”라는 뜻으로 ‘연못을 의미하는 澤’자와 ‘오른다는 뜻의 升’자를 따와 현액하였다. 택승정은 양평군 향토유적 제25호이다.

○ 광탄리廣灘里 지명 
 경기도 파주시 남동부에 광탄면6) 이 있다. 곡산공과 그 후손들이 파주에서 살다가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지평현으로 이주하면서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서 고향과 비슷한 지형인 이곳을 광탄리로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에는 곡산공을 비롯한 선대들의 묘소가 있다. 넓은 여울 옆 동네를 일컫는다.

○ 송구松衢 ·솔거리
 광탄종중의 연혁지에 따르면 소나무가 많은 약 칠천 평의 평지 한가운데 있는 활터에서 선조들이 체지軆志를 단련하였다고 한다. 택승정의 원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연혁지 문구는 다음과 같다.

 “송구는 종계입의宗契立議 정유추록丁酉追錄 (정유년 1777년. 정조 원년) 11조에 의하여 점유한 이래 풍치를 보완하고 역사를 표징表徵하여 왔으며 중원지中原地에 습사장이 시설되어 선조님들의 체지軆志를 단련하신 도장道場이었다.”

 
○ 출사出仕(벼슬길) 인원  
  광탄종중은 곡산군수 양윤정(곡산공)의 증손들로서 1,600년 경에 파주에서 광탄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곡산공은 조선초기 대제학 문양공 양성지의 증손이다. 이 후손들이 조선 후기까지 대를 이어가며 50여 명 이상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가문에서 진사 이상 판서까지 벼슬에 오른 인물은 병인양요의 영웅 충장공 양헌수  등 총 이백여 명이다. 관직은 판서, 한성판윤, 관찰사,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부사府使 등 다양했다. 많은 출사 인원 때문에 당시 지평현감도 광탄종중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로 위세가 있었다고 한다.
           
○ 봉황정鳳凰亭
 택승정의 무武를 언급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근 봉황정의 문文이다. 
광탄종중 후손들은 택승정에서 활쏘기를 익히고, 인근 봉황정에서 글을 배우며 이 고장 선비들과 교류 하였다. 양헌수 장군을 비롯한 많은 문무겸전한 인물들이 양성된 배경이다. 구성대 또는 봉황대라고도 부른다. 양평군 향토유적 제24호이다. 
 
      
○  종계·대동계大同契
 택승정과 봉황정은 광탄 종중 대동계에서 유지 보수해 왔다. 대동계는 종중의 성인 남자로 구성했으며 종계라고도 부른다. 

 광탄종중 종계 좌목에 따르면 대동계 설립목적은 “곡산공 수호 및 제사, 계원의 애경사, 봉황정 및 택승정의 유지보수 등”이다. 재정은 회원들이 봄·가을에 조곡을 납부하고, 내외관직의 관리들은 관직 등급에 따라 5필(疋) ~ 1필을 납부하여 계비를 충당 하였다. 종계는 후에 학계學契를 설립하여 서당을 짓고 자손 교육을 항구적으로 추진하니, 헌수공憲洙公 어린 시절 동년배들이 수업하였다고 구전한다.

필자는 광탄종중의 후손으로 정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택승정을 활터로 복원하고 충장공 양헌수 장군을 기념하는 활쏘기대회 등이 선대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 택승정에 걸려있는 시

둘레 넓은 숲에 활터는 평탄하고
한 줄기 맑은 시냇가에 언덕은 밝아
섬돌에 비친 햇볕 훈훈한 풀빛
빈 정자에 바람타고 솔 소리 울려오네
속도 겉도 올곧은 군자되어 
선조들의 습사를 뒤이어 힘쓰고야
활집 메고 돌아와선 차례 맞춰 술 따르며
이웃과 더불어 만끽하는 봄의 정취여

우초 양재규7)

 林園洞遠數弓平 一道淸溪挾岸明 映日重階薰草色 當風虛檻隱松聲
 志客皆正成君子 緖業相傳勉後生 度韔歸來斟序酌 四隣花樹共春情
又樵 梁在奎


※ 주석 ---------------------------
1) 조선 시대 활 쏘는 일반 백성들이 친목 도모, 상호 부조, 활터의 운영 등을 목적으로 계를 만들어 모인 활터의 중심 조직이었다. 
 2)내의 바닥 색깔이 이끼로 인해 검은색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강으로 흘러 든다.
 3)활을 쏠제 발에 힘주어 뻣는 ‘담터돌’이 현존한다고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집안 사람들은 택승정 인근에 있다고 한다. 찾아서 택승정의 원위치를 표석으로 남겨두아야 하겠다.
4) 택승정기문을 말한다.
 5)선비의 여섯 가지 덕목 禮(예법), 樂(음악), 射(활쏘기), 御(말타기), 書(붓글씨), 數(수학)를 말한다. 
 6)파주시의 광탄면 지명은 양주군의 백석면과 광적면에서 흘러 내려온 하천이 이 지역에서 문산천으로 합류하면서 넓은 여울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한문으로 넓을 ‘廣’과 여울 ‘灘’을 쓴다.
 7)양재규는 광탄종중의 10대 후손이다.
 
양희선(서울 화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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