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문화유산, 의성 관덕정

입력 : 22.11.17 15:04|수정 : 22.11.17 15:04|국궁신문|댓글 0
전국에 산재한 활터문화유산 자료화 필요해
관설사정 및 의성지역 활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돼

활터문화유산, 의성 관덕정
전국에 산재한 활터문화유산 자료화 필요해
관설사정 및 의성지역 활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돼
 

의성군 문화유산 8호
관덕정과 편액
 
명칭: 관덕정 觀德亭
위치: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운1리 마을회관 앞 삼거리
개요: 관덕정은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청운리 146-1에 있다. 2013년 5월 28일 의성군의 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사정’(射亭)이라고도 하고 '새청'이라고도 부르는 건물로 임진왜란때 창건되었다 하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도광 정미년(道光 丁未年, 1847)의 '운방관덕정실기'(雲坊觀德亭實記)에 따르면 마을 활터의 정자로 건립된 것이 영조 31년(1755) 홍수로 무너졌고, 정조 8년(1748)에 중건했다. 헌종 5년(1839)에 또 다시 홍수로 무너진 것을 새로이 세웠고, 1924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래의 자료는 청운리 주민들이 가보처럼 보관해 오던 “운방관덕정실기”(雲坊觀德亭實記) 목판본(가로 95cm, 세로 23 cm)을 지난 2012년 양우석씨(대구)에게 부탁해 국역한 내용이다. 관덕정의 유래와 연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자료: 의성향토사 카페


운방관덕정실기 편액

운방관덕정실기
雲坊觀德亭實記

하루는 김광옥과 김상룡 군이 우리 집에 들려 인사 하는 것을 마치고 소매에서 관청의 공문서 하나를 꺼내어 아울러 목판본 하나를 같이 보이면서 "이것은 구름방 마을 활터 정자에 관한 사적입니다" 라고 말하더라. 정자를 세운 것은 어느 때인지 잘 알지 못하나 지난번 건융 을미년(1775년) 홍수로 무너져서 정자건물이 없어진 것이 팔구년이 되었다.

갑진년(1784년) 봄에 마을원로 어른들이 의연금을 내어 옛터 그 자리에 정자를 다시 지으니 날개를 편 것 같은 팔작지붕 형이다. 그 때에는 고 무첨재 양주찬 공이 그 일을 글을 지어 목판에 쓰고 또 그 의연금 출연자 명단을 기록하였으나 다만 그 판본을 새기지 않아서 그 검은 것이 흐리게 이미 색이 변하고 더러워졌다.

도광 기해년 (1839년)이 되어 또 홍수로 무너졌다. 이때에는 우리를 몇 사람이 이 일을 분담하여 그 기둥이 썩은 것을 바꾸고 기와 깨진 것을 새것으로 가는데 그 비용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그래서 또 면내의 각 마을에 원조를 구하여 공사의 준공을 하였다.

지금 군청 관원 아무개 무리 들이 와서 말하기를 관청을 수리 하는데 쓸려고 그 기와를 걷어 오라고 한다. 아마도 관에서 소문을 잘못 듣고 의혹하기 때문일 것 이다. 동네 사람들이 탄식을 하며 그 판본을 가지고 관청에 가서 하소연을 하니까 그제서야 관청에서도 비로소 크게 깨달았다. 직서로 올린 소장에 의하여 판단하면 소장의 내용이 앞에서 들은 소문하고는 완전히 서로 반대다. 또 그 출발은 백성들 힘에서 나왔지만 활터 하고는 관계가 없은즉 관에서도 억지로 철거하여 허물지 못할 것이므로 가능한 한 사적과 소장을 근거로 하여 백성들이 끝가지 철저히 조사하여 보고 하였다. 관원이 또 나와서 "이미 활터 정자라고 부르면서 마을에는 활 쏘는 사람이 없으니 철거한들 무슨 상관 이리요" 라고 말 하더라.

만약 그 정자가 읍의 활터에 소속된 것이라면 문헌도 없으므로 증거를 될 것이 없다. 관에서는 이에 그 문서 말미에 거듭 쓰기를 "이 정자는 백성들이 설립한 관계로 현재 자리를 짜는 처소로 사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억지로 빼앗아 가리요 지금 이후로는 이 정자를 영원히 본동의 관덕정으로 삼는다”라고 하드라. 이에 정자는 헐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귀로 듣는 데로 믿으면 되겠습니까. 선생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그 사직을 적어 오래도록 전수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니 내가 글을 못 한다고 사양 하지 못하고 드디어 정자 이름으로서 두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자세히 말해 주었다. 여기서 자리를 짰으니 席室로 이름 할 수 있고 여기가 마을회의 하는 집이니 동사(洞舍)로 이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석실(席室)로도 말하지 않고 동사(洞舍)로도 말하지 않고 반드시 사정(射亭)으로 이름 하고자 했으니 대게 그 지방에 활터가 있어서 활쏘기로 덕을 살핀다는 뜻을 취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아마도 관덕(觀德)은 반드시 활쏘기로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들으니 이 마을에는 낮에는 밭 갈아 농사일 하고 밤에는 글 읽어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하고 또 자리를 부지런히 짜서 그것을 공물로 바쳐서 생업의 밑천으로 한다고 한다. 읍에서 풍속이 아름답고 사람들 마음이 순박한 것을 논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본면 우곡면을 말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한가한 날 틈을 내어 이 정자에 올라오면 선비는 시와 예를 강론하고 농부는 뽕과 삼을 마련하고 장인은 기술의 익숙함과 서투름을 따지고 장사꾼은 값이 떨어질 것인가 올라갈 것인가를 논 한다. 일 하는 직업을 생각할 때는 자기가 처한 바에 따라 각자 가능한 것을 말할 뿐이다. 때로는 친구들이 술을 가지고 여기서 잔치를 열어 즐겁게 놀면서 황음하지 않으면 빈풍 칠월의 풍년가도 당풍의 귀뚜라미 노래도 모두 이 정자에서 얻게 될 것이다. 

반드시 활을 잡고 화살을 앞에 차지 않아도 백성들의 기풍을 알 수 있고 백성들의 풍속을 증명할 수가 있으며 백성들의 덕을 살필 수가 있다. 지금 홍 군수가 활터 과녁도 없는 것을 알면서 "관덕 觀德" 이라고 허용한 것으로써 더욱 군자의 마음 씀을 볼 수가 있다 "어찌 이것으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안 하리요. 정자 이름을 고쳐 ‘관덕’이라 하고 대저 이 이름을 지은 뜻에 더욱 힘쓸 것인 저”하니 이에 두 사람이 "예" 하고 마침내 판을 걸어 "운방관덕정실기"라 하다.

도광정미년(1847년) 구월 상순 오천필 쓰다
(해설인 양우석)
 

2022년 관덕정
신평면 청운1리 마을회관 앞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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