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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신문

전통활쏘기연구회 '시지' 세미나 마쳐

입력 : 21.07.25 13:12|수정 : 21.09.07 13:12|국궁신문|댓글 0
1870년대 충청수영에서 기록한 시지 연구

전통활쏘기연구회 '시지' 세미나 마쳐
1870년대 충청수영에서 기록한 시지 연구

전통활쏘기연구회(회장 김상일) 주최로 7월 25일(일) 열린『최초의 군영 시지 발견과 의의』라는 주제의 온라인 세미나가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세미나는 지난 2020년 보령문화원 황의호 원장이 보령시 남포면 양항리 마을지(誌) 작성을 위한 자료 수집과정에서 양향1리 문영룡의 5대 조인 문응준(원산별장 역임)의 고문서에서 발굴한 시지에 대한 발굴과정과 연구결과를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이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김기훈 교수(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의 진행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먼저 발표자에 대한 소개가 있었으며, 이어서 주제 발표가 진행되었다. <1870년대 충청수영에서 기록한 시지 연구>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보령문화원 황의호 원장은 시지 중앙에 元三退二斷一(원삼퇴이단일)이라고 기록되고, 양쪽으로 8명씩 16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107×46㎝ 크기의 시지를 국궁계에 최초로 공개하였다.

[시지(矢紙, 107×46㎝)]

황의호 원장은 시지 작성 시기에 대해 ‘시지를 만든 일자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시지에 기록된 문진현(文鎭賢)과 복준묵(卜俊黙), 김준모(金俊模) 등의 이력을 통해 1870년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활쏘기가 열린 장소에 대해서는 ‘시지에 기록된 김준모와 복준묵이 각 1876과 1881년 원산별장에 임명된 사실을 토대로 충청수영이나 원산진(원산도)에서 활쏘기를 하고 시지를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나 활쏘기에 참여한 인원과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원산진(원산도)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기는 어렵다고 생각되어 충청수영으로 추정’하였다고 했다.

이 외에도 시지에 기록된 각종 기호와 문자에 대한 분석결과를 비롯하여 원산도 관가(원산진)에서 보관하던 활(1995년 8월)에 대한 사진도 소개하여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발견된 활(목궁)은 15년 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전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충청수영과 원산진의 위치]

황의호 원장의 발표에 이어 첫 번째 지정토론자로 나선 이건호 접장(국궁신문 대표)은 시지에 표기된 각종 기호와 문자를 분석하여 시지는 편사 5순 경기기록이라는 사실을 제시하였고, 특히 시지의 문진현 한량 이름 아래 표시된 ‘魁(괴)’는 장원한 궁사에게 표시하는 풍속이라는 설명과 시지중앙에 쓰여진 元三 退二 斷一(원삼 퇴이 단일)을 경기방식으로 해석하여 소개하였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윤백일 접장(군산 진남정 고문)은 시지 작성시기에 대해 복준묵이 원산별장 재직(1881. 3. 29~1882. 4.) 기간 중에 대회가 열렸을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또한 활쏘기가 이루어진 장소에 대해서는 충청수영 본진 관덕루로 특정한 발표자의 견해를 존중하면서도 원산진의 지정학적,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원산진에서 대회가 열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논문을 발표한 황의호 보령문화원 원장은 지역의 향토문화 분야를 발전시키는데 진력하여 많은 연구결과를 발표하였고 특히 충청수영성(忠淸營城)의 지리적 배경을 최초로 밝혀내는 등 지역에서 문화유산의 보존관리를 통한 향토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세미나 영상은 전통활쏘기연구회에서 제공하는 아래의 주소에 접속하여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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