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터는 활만 쏘는 곳이 아니다. 지금은 스포츠 현장으로 변했지만,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풍류가 살아있는 우리의 전통 문화공간이었다. 한량획창이 있어서 한량이 과녁을 맞추면 "누구누구 변~!"하는 획창을 했고, 뒤이어 기생획창이 뒤따랐다. 물론 기록을 적는 획지는 붓글씨로 썼다. 과녁 맞추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예술이 숨쉬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딸린 수많은 말들이 활터로 흘러들어와서 자리잡았다.

예컨대 '살판'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 '살판 났다.'고 할 때의 그 살판이다. 이 살판은 원래 남사당의 용어로, 펄쩍펄쩍 뛰노는 광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씨름판에서 우승한 사람이 그런 동작을 하기 때문에 기운이 넘쳐 어쩌지 못하는 사람을 살판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용어가 활터에 들어와서 정착했다. 옛날 무과과녁을 1획(10순 50시)를 쏴서 그중 20시를 맞추는 사람을 살판이라고 한 것이다. 15시는 소살판, 25시는 대살판, 30시는 시수꾼이라고 불렀다.

활터에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우리 말들이 풍성한 낱말밭을 이루며 살아있다.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한글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들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예컨대 '깍지'라는 말이 있다. 콩깍지라고 할 때의 깍지와 같은 말이다. 활터의 깍지는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쇠뿔로 만든 보호기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 손가락으로 당기는 양궁과 달리, 국궁은 시위를 엄지손가락으로 당긴다.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는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엄지손톱을 검지와 중지로 덮어 힘을 보탠다. 그렇기 때문에 시위에 걸리는 엄지손가락 안쪽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쇠뿔을 골무 모양으로 깎아서 손가락을 덮게 한다. 이것이 깍지이다. 이 깍지의 모양에 따라서 암깍지, 숫깍지, 턱깍지, 유열깍지, 흑깍지, 은각깍지와 같이 다양한 말을 낳는다.

△ 암깍지

이 깍지라는 용어가 자리잡자 거기서 수많은 말들이 파생했다. 깍지를 끼우는 손을 깍짓손이라고 하고 활을 쥐는 손을 줌손이라고 한다. 또 깍짓손을 발시할 때 쭉 뻗어서 다 펴는 것을 온깍지라고 하고, 양궁처럼 그 자리에서 똑 떼기만 하는 것을 반깍지라고 한다. 사법과 관련하여 깍짓손이 어떤 모양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이름이 따라붙는다. 게발깍지, 조막깍지, 벗깍지, 공깍지, 들깍지.........

이 깍지라는 용어는 마침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한다. 즉 깍짓손을 떼는 동작이 나비처럼 가볍다고 하여 그렇게 쏘는 사람을 나비깍지라고 부른다. 경남 진주에서 활을 쏘던 김향촌 여무사가 젊어서 나비깍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깍지 하나에서 파생한 낱말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고 적용 영역도 광범위하다. 지금까지 거론한 깍지 중에서 사전에 등재된 말은 극히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깍지나 깍짓손 정도가 등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활터 용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몸에 대한 용어부터 시작해서 활터에는 정말 엄청난 양의 우리 말이 있다. 우리 말의 파생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예컨대, 시위의 끝 부분 고리를 심고라고 하는데, 이 심고가 걸리는 활의 끝부분을 고자라고 한다. 그런데 고자를 납작하게 깎지 않고 두텁게 깎는 대신에 홀쪽하게 만든 고자가 나왔다. 조선시대의 그림에서 보는 전쟁용 활에서 응용한 것이다. 그러자 그런 고자에 대해 선고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선고자라는 말이 나오자 지금까지 그냥 고자였던 평평한 고자가 '평고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활터에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용어들이 많다.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용어도 부지기수로 많다. 한 마디로 활터는 우리말의 보물창고이다. 이 창고에서는 아직도 새로운 말들이 태어난다. 그러고 보면 활터는 보물창고이기도 하지만, 이제 막 새로운 말들이 태어나는 애기집이기도 하다.

△ 숫깍지 

출처 : 국궁포럼(http://cafe.daum.net/CAFE.K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