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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射契)-사라져 간 전통 활쏘기 조직

기사승인 21-10-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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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 조직인 사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 필요해

사계(射契)-사라져 간 전통 활쏘기 조직
오늘날 국궁계에서 ‘사계’(射契)라는 조직의  명칭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거의 표준화 된 규약인 정관에 ‘사원’(射員)의 조직과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사정의 규약을 보면, 사계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계좌목’ 등]. 극히 일부의 사례이지만, 영엄 열무정에는 열무정 사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고, 사정 조직도 병존한다. 사계는 사원도 들어 있지만, 사원이 아닌 후원만하는 사람도 들어있다는 점이 다르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런 설명을 들었지만, 이 전통적인 조직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특히 왜 사계가 없어지고, 사원 조직으로만 남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 궁금하였다.

『조선의 궁술』에 사계와 사계원의 의무가 간단히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계가 애매모호하게 기술되고 있다. 사계가 있는 사정도 있고 없는 사정도 있으며, 자기 사정에 사계가 없을 경우에 타 사정의 사계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기가 사원인 본 사정과 사계에 가입한 다른 사정이 편사를 할 경우에는 어느 편으로도 출전할 수 없다는 관행도 소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개 속에서도 왜 사원 조직과 사계 조직이 따로 존재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강경 덕유정 사계좌목 일체]

 
마침 사계와 사원 조직 (‘**정’) 간의 차이와 변화 양상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사례를 발견하였다. 소래정 이야기다. [‘소래정“, 전국의 활터, 민속박물관, 2007, 94-101] 소래정의 역사를 보면, 사정이 건립되기 전, 시흥 지역에는 몇 군데서 소규모의 인원들이 모여 과녁을 세워두고 활쏘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의 일정한 공간에서 활동하지 못하던 이들은 날자를 정하여 한 번씩 모여 대회도 하고 친목도 다졌다.  이 활동을 주관하는 조직이 사계였다. 

2007년 당시 제보자인 추창환 씨에 의하면, 시흥에서의 활쏘기는 구한말부터 1966년 대한궁도협회에 소래정으로 공식적으로 등록하기 전까지는 사계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활을 쏘던 사람들이 한량, 활량이라고 불리던 시절, ‘즉 1966년 활터가 세워지기 이전까지는 따로 고정된 활터 없이 , 지역마다 돌아다니면서 활을 쏘는 형태로 비구속적인 형태의 사계 조직으로 모임이 이루어졌다.“ [’소래정‘, 95쪽]

이렇게 지역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서로 알게 되면서 소래면의 사계 조직이 만들어 지게 되었고, 사원들이 각기 돌아가면서 한번 씩 계주를 맡았었다.  옛날은 한 달에 두 번 있었으며, 그 때 계주가 된 사람의 지역으로 가서 함께 모여서 활을 쏘았다고 한다. 사[계]원들마다 돌아가면서 계를 차려서 함께 활을 쏘고, 계모임 때마다 돈을 내서 곗날 습사 때 필요한 자금으로 쓰고, 자금이 남으면 당시 전국대회에 갈 때 마다 내는 찬조금에 사용하거나, 모아 두었다가 인천시 (과거 남동구) 남수정 등과 같은 당시 인근 활터와의 편사 대회 자금에 활용되었다. [‘소래정’, 96쪽]

이런 형태로 진행되던 시흥의 활쏘기 형태에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1966년 은행동에 파평 윤씨 종중의 땅을 임대하여 활터를 만들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 사업을 주관한 것은 윤태환 씨를 중심으로 한 사계 모임이었다. 사계는 그곳에 있던 초가집을 구입, 보수하여 새로 짓고 ‘소래정’이라는 사정 명칭을 달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때 대한궁도협회에 등록도 하게 된다. 등록 사정으로 활동하면서 사계라는 조직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2007년 당시에도 소래정의 조직에 초기 사계의 유풍은 아직 남아 있었다.  

소래정의 조직은 사계의 조직과 임원진의 조직이 겹쳐져 있다. 임원진에 사두, 부사두, 재무 외에 독특하게 계장이라는 직책이 들어 있다. 이 계장이 바로 초기 사계의 유풍이다. 다만 그 역할은 많이 축소되어, 곗날에 이루어지는 자정 대회만을 주도한다고 한다. 이날 계장은 염출한 돈을 받아 재무에게 전달하고,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식사와 술을 대접하는 일을 주관한다.

이는 오늘날 경기 지역 일부 사정에서 행해지는 유사제도를 보는 듯하다.  현대적 조직인 임원진이 있고, 회비를 걷는 재무와 대회를 주관하는 총무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정 대회의 경우 그 식사와 상품, 비용 등을 유사들이 주관하고, 그 임무는 순번대로 돌아가며 맡는 것이 유사제도이다.  소래정의 계장 제도가 다른 정에서는 이름만 바꾸어 유사 제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계 조직이라는 유산이 현재에도 유사 제도라는 형태로 축소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암 열무정 사포계 자료 일체)

 
이러한 소래정의 사례는 사계조직과 사원조직의 차이와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사계에 대해 이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1) 사계는 근대적인 활터 조직이 등장하기 이전의 활터 조직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한국 사회의 계모임이 활터에 적용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계’라는 조직을 통하여 자금을 모아 두었다가, 친목 활동이나 상호 부조의 목적에 사용하였다. 활터에도 ‘각궁계’ 와 같은 특수 목적의 모임이 있었다. 그 중 사계는 전체 조직원의 활동과 연관되는 모임이었다. 강신일 혹은 곗날 활쏘기 행사에 사용되는 각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비용을 염출하고, 남은 돈은 보관하고 이식 활동을 통하여 자금을 불리는 그런 기능을 하던 조직이 사계였다. 강경 덕유정의 사계나 열무정의 사계를 통해서 이런 기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2) 소래정의 사례는 사계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엿볼 수 있게 한다.  확정적인 활터를 갖고 있지 못하고, 여러 곳에서 임시적인 간이 시설을 활용하여 활쏘기를 하는 경우, 한 번씩 통합 모임이나 대회를 위하여 조직한 것이 사계였다. 이런 사계는 사정이 건립되고, 그 사정을 중심으로 모든 활동이 전개되면서 자연히 그 기능과 역할이 사라져 갔다.  사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보다 근대적인 사원 제도로 바뀌어져 간 것이다.

3)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사정이 현대적인 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표준화된 정관이 작성되고, 그 안에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조직으로서 임원진과 사원의 역할이 분명하게 명기된다.  일반 대회는 물론 자정 대회도 임원진들이 주도한다.

4) 일부 사정에 사계의 유풍이 아직 남아 있다. 예컨대, 영암 열무정은 아직도 ‘사계’가 존속되고 있고, 사계장 외에 실무를 총괄하는 공원이 임명되고 있다.  소래정에는 ‘계장’이라는 직책으로 초기 사계의 유산이 축소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경기 지역의 사정에서 실시되고 있는 유사제도 또한 ‘사계’ 전통의 변용으로 생각된다.   

5) 국가 문화재로 등록되고, 나아가 세계 무형 문화 유산 등재를 추진하려고 하는 시점이다. 우리 활쏘기 문화의 중에 한 때 유행했던 활쏘기 조직인 ‘사계’ 에 대한 보다 더 실증적이고 분명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기훈(사법고전연구소)

국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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